실력의 배신
저자 박남기 분류 사회학일반
발행 쌤앤파커스 저자소개 전 광주교육대학교 총장
책 표지
목차 및 서평 실력주의에 대한 환상과 과도한 집착이 만들어낸
한국 사회의 거대한 불평등,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EBS <교육대토론>의 사회자 박남기 교수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실력주의를 해체하다

“능력이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 2016년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SNS에 올린 글은 전국을 분노하게 했다. 그의 발언은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배금주의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것은 오늘날의 실력주의가 부의 세습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타락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기묘하게도, 박정희 개발독재 시절부터 이어져 온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라는 구호의 망령은 2015년 박정희 기념관에 걸린 현수막에서 되살아나기도 했다. 저 구호 앞에 숨겨진 단어를 찾아보자. 그것은 오늘날 청년 세대를 끝없는 불안과 좌절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있는 ‘노오력’이란 단어일 가능성이 높다.
본래 실력(능력)주의는 부모의 재산이나 능력이 아닌 개인의 실력, 즉 부단한 노력으로 이루어낸 실력에 따라 사회적 재화를 배분하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와 대부분의 연구자는 실력주의 사회가 공정한 사회이며, 현실적으로도 실현 가능하다고 믿어왔다. 소득 격차 심화, 세대 및 계층 간 갈등 심화, 사교육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공교육의 파행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다양한 문제가 실력주의의 완벽한 실현으로 해결되리라 믿어왔다. 그러나 더욱 완벽한 실력주의를 구현하려 하면 할수록 결과는 예상과 다르게 나타났다. 부의 양극화는 더욱 심각해졌고, 공정성과 정의에 대한 개념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실력’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차별과 배제는 과연 공정한가?

《실력의 배신》은 앞서 열거한 우리 사회와 교육 문제의 뿌리가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실력주의에 긴밀히 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실력주의 사회에서 말하는 실력이란 거래 가능하고 수요가 존재하여 부를 창출하는 데 기여하는 협의의 실력을 의미한다(참고로 광의의 실력이란 개인적·사회적 재화, 즉 개인 및 사회의 변화와 행복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재화를 창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개인의 제반 역량?지식, 기능, 태도?이다). 저자 박남기 교수(광주교육대학교 전 총장)는 이 책에서 우리 사회 문제의 뿌리가 실력주의에 닿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더욱 완벽한 실력주의를 만들고자 하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악화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우리의 믿음과는 정반대로 학벌을 타파하면 실력주의가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력주의가 학벌사회를 만든 원인임을 치밀하게 분석한다.
실력주의 사회와 관련하여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신화(환상)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 실력주의 사회는 공정하고 바람직한 사회라는 믿음이다. 둘째, 우리 사회는 실력주의 사회가 아니라는 믿음이다. 셋째, 학벌을 타파하면 실력주의 사회가 구현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넷째, 실력주의사회가 구현되면 우리가 꿈꾸는 공평한 세상이 되고, 사교육 문제와 과도한 경쟁 등 교육 관련 문제가 해결되어 학교교육도 정상화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저자는 이런 잘못된 환상을 깨뜨리고 실력주의의 짙은 그림자를 어떻게 하면 걷어낼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치열하게 토론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실력은 노력만이 아니라 타고난 재능과 특성, 부모님, 학교 선생님, 우연히 만난 주위 사람, 행운 등 참으로 많은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형성된다. 나는 실력이 개인의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이고, 따라서 자신이 쌓은 부(명성, 권력 포함) 또한 자신만의 것이라는 착각에서 사람들이 벗어나도록 돕고자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그러한 착각(혼자만의 노력으로 성취한 결과물이므로 혼자서 다 누려도 된다는 착각)에서 벗어난다면 자신이 누리고 있는 어떤 종류의 결실을 사회에 환원하거나 타인과 나누는 것이 실력주의의 순수한 목적에도 더 부합함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도 그 결과가 단지 자신의 노력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실력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차별과 배제는 절대 공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실력주의의 그림자가 낳은 신세습사회에서
평등 이념을 더 강조하는 신실력주의 사회로

오랫동안 청년, 교사, 부모 세대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교육적 대안을 모색하고 현장에서 교육적 대안을 실험하고 실천해온 저자는 실력주의의 그림자를 옅게 하기 위한 대안으로 신실력주의 사회를 제안한다. 그렇다면 신실력주의 사회란 무엇일까?
“신실력주의 사회는 실력과 직업 배분 사이의 연결 고리는 유지하되, 직업과 보상 사이의 연결 고리는 느슨하게 하는 사회다. 누진소득세, 최고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임금 체계 개혁, 저소득층 조세 감면 제도, 마이너스 소득제, 임금보호 제도, 고용보호 제도, 실업보호 제도, 상속세, 기부문화 확산 등을 통해 근로 의욕은 유지시키면서도 직업 간 사회적 재화 분배 차이를 줄이는 제도적·사회문화적 보완 장치가 마련된 ‘근로의욕 고취형 복지사회’가 바로 신실력주의 사회이다.” 또한 “헌법에 명시된 ‘행복추구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사회가 신실력주의 사회이다.”
교육개혁을 통해서 신실력주의를 구현하려면 우선 자유와 평등 이념을 절반씩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평등 이념을 더욱 강조하는 지점으로 내용과 제도가 이동해야 한다. 저자는 그동안 정부와 사회가 학벌 타파를 통한 실력 중심 사회 구현을 위해 다양하게 노력해왔지만 오히려 학벌사회적 특성이 강해질 뿐만 아니라 동시에 세습사회적 특성마저 강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강력하게 비판한다.
실력주의 사회 구현이라는 강박이 신세습 사회로 이행하게 된 대표적인 예로는 몇몇 명문대 졸업생이 법조계를 장악하는 현상을 방지할 목적으로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를 도입했으나 결과적으로 법조인 세습 경향이 강화된 것을 들 수 있다. 실제로 고소득 기업인 집안 출신은 로스쿨, 법조인 집안 출신은 사법연수원으로 이전보다 더 많이 몰리고 있다. 또한 학부에 비해 학생 선발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데다 부모의 부를 더 필요로 하는 전문대학원(치의학전문대학원, 약학전문대학원)에서 전문 직종 인력을 양성함으로써 부모의 직간접적 영향력이 강화된 것도 들 수 있다.
몇 가지만 더 들어보자. 학벌 타파를 명분으로 내세운 국가고시 제도 개혁안을 봐도 외무부를 포함한 정부 부처들에서 인턴제를 비롯한 다양한 특별 채용 제도 도입을 통해 고위직 세습 경향을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를 가져오고 있다. 대기업의 신입사원 채용 방식을 지필고사에서 심층면접을 포함한 다양한 방식으로 바꿈으로써 오히려 수도권 대학 위주의 신학벌주의를 탄생시킨 것도 대표적이다.

우리가 그토록 공정하다고 믿었던,
실력의 배신

“실력은 순전히 개인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실력주의 사회가 내세우는 공정성은 정말 정의로울까?” “실력으로 성공한 사람은 정말 그 결실을 다 가져도 될까?”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개개인의 실력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에는 주목하지 않고 실력 중심의 평가 방법과 제도에만 골몰하면서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실력주의를 계속 강화하는 데 있다. 그 결과 청년들조차 실력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차별과 배제는 정당하다고 여기며, 심지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같은 사안에 대해서 ‘역차별’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실력의 배신》은 지금껏 우리 사회가 그토록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이라 믿었던 실력주의에 대한 환상을 직시하고 한국 사회의 거대한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초석을 놓는다.
이 책은 지금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고민하는 교사들에게는 학생들에게 어떠한 가치와 지혜를 가르쳐주어야 할지 안내해줄 것이며, 더 나은 교육제도를 모색하는 이들에게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줄 것이다. 실력주의의 어두운 그림자에 갇혀 있는 대다수의 청년들도 현재 자신의 노력이 헛된 것이 아님을, 더 나아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단지 노력이 부족해서,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가수 신해철은 불의의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불과 몇 주 전에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공은 운이다. 우리는 운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되기 위해 노력할 뿐. 우리는 그냥 이제 행복하면 된다.”

이전글 이전 글이 없습니다
다음글 김석동의 한민족 DNA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