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공교육 다양성 필요”에 자사고 폐지파 2명, 유지로 돌아서
작성자 중앙일보
등록일 2017-08-14 13: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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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이슈 배틀⑤ 외고·자사고 폐지해야 하나

한국인은 흔히 ‘다름’과 ‘틀림’을 혼용한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가 아니라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는 진영 논리가 판치는 까닭이다. 이를 극복하지 않고선 국가 개혁은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중앙일보는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 코리아’의 하나로 ‘2017 이슈 배틀’ 시리즈를 싣고 있다. 가장 첨예한 이슈를 골라 ‘틀림’이 아닌 ‘다름’의 토론 현장을 배틀 형식으로 생중계한다. 다섯 번째 주제는 ‘외고·자사고 폐지’다.



1 Round

“정권에 따라 교육 바꾸나”
9명 중 6명 현행 유지 선택

.◆사전투표=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지난 6월 경기도 내 외국어고와 자율형사립고 10곳을 2020년 이후 일반고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외고와 자사고는 5년마다 시·도 교육청의 평가를 거쳐 재지정된다. 같은 진보 성향인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예고되지 않은 불이익을 줄이려는 고민이 필요하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중앙정부가 전환 로드맵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외고와 국제고,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도 포함됐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구체적인 방법은 의견 수렴이라든가 국가교육회의의 논의를 거쳐 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방향은 정해졌는데 구체적 액션이 없으니 현장의 혼란은 당연하다. 찬반 논란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7월 14일 ‘2017 이슈 배틀’ 다섯 번째 토론이 열렸다. 이날 주제인 ‘외고·자사고 폐지’를 놓고 사전투표를 한 결과 판정단 6명이 ‘현행 유지’를 택했다. 한 판정단은 “개혁 목소리가 높지만 교육시스템은 정권에 따라 이리저리 쉽게 고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2 Round

“외고·자사고 상위권 독식”
폐지 찬성 5명으로 역전

◆전문가 의견 청취=폐지 찬성 측인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는 “한국 고입 전형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다단계 불공정 전형”이라고 지적했다. “영재고가 가장 먼저 중3 학생을 뽑고 자사고와 특목고에서 골라간 뒤 자율고·특성화고·과학중점고를 거쳐 남은 학생이 일반고로 배정되는 것이 현재 고입 전형이다. 대학 입시를 고입처럼 서울대가 먼저 뽑고 그다음 연·고대, 탈락하면 수도권, 지방대 순으로 보낸다면 납득할 수 있겠나? 국민의 52.5%(리얼미터)가 일반고 전환에 찬성하는 건 이런 현실이 불합리하다는 데 공감한다는 의미다.”

오세목 중동고등학교 교장(자율형사립고연합회장)도 밀리지 않았다. 오 교장은 “자사고가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것 자체가 오해”라고 지적했다. “서울 내 광역단위 자사고는 1단계에서 내신성적에 관계없이 정원의 1.5배수를 추첨으로 선발한다. 그리고 인성면접을 통해 합격자를 선발한다. 성적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는데 자사고 때문에 사교육을 받는다는 게 말이 되나. 선발고사로 신입생을 뽑던 과거 사례를 가지고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송 대표가 다시 반박에 나섰다. 그는 “추첨-면접 전형을 하는데 자사고 1학년 중 77.8%가 중학교 성적 상위 50% 내에 속하고, 20% 안에 들어가는 비율도 무려 38.6%”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를 보면 초등학교가 24만1000원, 중학교가 27만5000원, 고등학교가 26만2000원이다. 외고·자사고가 좋은 대학 진학과 좋은 직장 취업에 유리한 경로라는 인식이 뿌리를 내리면서 중학교가 사교육의 중심 구간이 된 것이다. 학교 체제는 단순화하고, 고교학점제 등을 도입해 교육의 다양성을 도모하는 게 정답이다.” 이에 대해 오 교장은 “월 46만원(자사고 평균)이면 다닐 수 있는 학교를 부자만 다니는 특권 학교인 것처럼 매도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학비를 못 낼 정도로 어려운 학생은 정원의 20%에 달하는 사회통합전형으로 입학할 수 있고, 장학금도 지원한다. 자사고는 정부의 지원을 단 한 푼도 받지 않고 필요한 재원을 학부모와 학교 법인이 부담한다. 그 대가로 얻어낸 자율성으로 새로운 교육과정을 적용하면서 공교육의 질을 높여왔다. 자사고가 마치 일반고를 황폐화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주장해선 안 된다.”

전문가가 자리를 떴다. 두 번째 투표에선 두 명의 판정단이 생각을 바꿨다. 현행 유지를 택했던 판정단④는 “극소수인 외고, 자사고 출신이 상위권 대학을 독식하고 있다는 주장에 공감했다”며 판정단⑤는 “특목고로서의 외고의 기능이 사실상 소멸됐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며 폐지 입장으로 돌아섰다.


3 Round

“특목고 체제는 중3 아이들 억압하는 것”
“강제적 평등으론 4차 산업혁명 대비 못해”

◆집중토론=전문가 의견 청취 후 우위를 점하게 된 폐지 주장 측이 선공에 나섰다.

“현실적으로 외고·자사고 출신 학생이 좋은 대학을 거쳐 흔히 말해 좋은 직장이라는 대기업과 법조계로 간다. 부모 입장에선 외고·자사고에 보낼 고민을 안 할 수 없다. 일부 특권층에선 영어유치원-사립초-국제중 코스를 밟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선발 절차가 불공정하니 동시 선발을 하자는데 자사고가 못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특권을 인정하는 것 아닌가?”<판정단②>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평준화 논쟁이 치열했다. 자사고도 그런 배경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지금은 평준화 논쟁이 사라졌다. 외고나 자사고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됐기 때문이다. 평준화를 원치 않는 일부 계층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는 의미다. 그들만의 리그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4.8%(외고·자사고 등 비일반고 정원 비중)가 나머지 95%의 사고를 바꾸고 있다. 사회 전체가 과잉 경쟁에 내몰리는 것이다.”<판정단③>

현행 유지 측에선 ‘대학 입시 과열의 책임을 일부 특목고에 묻고 있다’고 반박했다. "대부분의 학부모와 학생은 입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현실적인 요구가 있고, 대학도 사실상 서열화돼 있는데 거기에 충실했다고 일부 고교의 잘못인 양 몰아붙여선 안 된다. 전부 일반고가 되면 입시 경쟁이 사라지나? 외고도 마찬가지다. 외고를 진학했는데 외국어계로 진학하지 않는다고 문제 삼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운 발상이다. 경쟁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걸 부정할 게 아니라 공정한 룰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진짜 목표다.”<판정단⑥>

"다들 핀란드 교육을 본받자고 하는데 실제로 훌륭하다. 학생이 재즈를 하고 싶다고 하면 재즈 선생님을 붙여주고, 타악기를 만들고 싶다고 하면 목공 전문가를 붙여준다. 그런데 이게 되려면 돈이 필요하다. 한국의 공교육 재정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이다. 하드웨어와 인적자원에 투자하지 못하면서 왜 그런 교육을 하겠다고 스스로 나선 학교들을 탓하나?”<판정단⑧>

그러자 판정단④는 "경쟁에서 도태하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가르쳤고, 그 바람에 서울대에 못 갔다고 재수·삼수하는 나라가 됐다”며 "한창 꿈꾸고 자신을 탐색할 시기인 중3 아이들을 어른의 방식으로 억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판정단⑨는 ‘오히려 자사고가 자율성을 더 키워서 미래에 대비하도록 기회를 주자’고 주장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다. 이젠 이상한 애, 특이한 애를 배출하는 교육으로 가야 한다. 정시 비중이 줄면서 이미 많은 자사고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이건 일반고에도 보이지 않는 압박이다. 자사고마저 없으면 일반고는 변해야 할 최소한의 유인마저 얻지 못한다.”

이 밖에 현행 유지를 주장하는 쪽에선 ‘ 강제적 평등으로 돌아가면 지역 격차가 심해지고, 수도권 집중 현상이 더 심해질 것’ ‘일반고 전환에 따라 매년 수천억원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다’와 같은 주장이 나왔다. 외고는 ‘영어를 제외하고 제2외국어 중심으로 재편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최종 투표가 시작됐다. 판정단⑤는 다시 ‘현행 유지’로 선회했다. 판정단①도 판정단⑤와 함께 입장을 바꿨다. 이에 따라 결과가 사전투표와 같아졌다. 두 사람의 고개를 끄덕이게 한 건 판정단⑦의 이 한마디였다.

"어떻게든 대학을 보내려던 그 마음과 열기가 저성장 시대에 진입하면서 점점 옅어지고 있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대학의 가치 자체가 달라질 것이다. 외과 수술(폐지)보다는 공교육 다양성 확보라는 원래 취지를 살려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맞다. 한국 교육의 최대 리스크는 교육 현장의 문제가 아니라 정권 따라 교육 철학이 바뀌는 것 아닌가?”



첨예한 이슈 ‘삼세판 토론’ … 합의점 찾기 실험

‘이슈 배틀’ 어떻게 진행하나

‘2017 이슈 배틀’은 배틀 형식의 토론을 통해 서로의 다름을 드러내 가되 합의도 모색하는 실험이다. 이를 위해 소속 대학과 전공·연령대가 다양한 10명의 교수로 판정단을 구성한다. 판정단에선 해당 이슈 전공자를 일부러 배제한다. 전문가는 각자의 소신이 확고해 토론을 해도 입장을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건전한 상식과 지적 능력을 갖춘 비전공자가 찬반 양측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내부 토론을 거쳐 입장을 정리해 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토론은 3라운드로 이뤄진다. 1라운드는 평소 판정단의 생각을 드러낸다. 2라운드에선 찬반 양측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판정단이 다시 투표한다. 3라운드에선 판정단이 스스로 참여해 토론한 뒤 최종 입장을 정한다. 라운드마다 입장을 바꾼 판정단은 왜 그랬는지 이유를 밝힌다. 솔직한 입장 표명을 유도하기 위해 판정 결과는 익명으로 처리한다. ‘2017 이슈 배틀’은 중앙일보와 한국사회과학협의회·안민정책포럼이 공동 주최하고, SSK 네트워킹지원사업단이 주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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