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이대론 공무원 철밥통 못깨” 행시 폐지 찬반 5:5 → 7:3
작성자 중앙일보
등록일 2017-09-28 14: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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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이슈 배틀 ⑦ 행정고시 폐지 옳은가

한국인은 흔히 ‘다름’과 ‘틀림’을 혼용한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가 아니라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는 진영 논리가 판치는 까닭이다. 이를 극복하지 않고선 국가 개혁은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중앙일보는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 코리아’의 하나로 ‘2017 이슈 배틀’ 시리즈를 싣고 있다. 가장 첨예한 이슈를 골라 ‘틀림’이 아닌 ‘다름’의 토론 현장을 배틀 형식으로 생중계한다. 일곱 번째 주제는 ‘행정고시 폐지’다.
  

1 Round  

인사혁신처장 “개선이 맞다”  
판정단 10명 폐지 찬반 팽팽

◆사전투표=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 개혁성향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와 싱크탱크인 더미래연구소가 ‘공무원 인사 개혁안’을 발표했다. 개혁안엔 5급 공무원 공개채용시험(행정고시)을 없앤 뒤 7급 공채로 통합하고, 민간 경력 채용을 4급까지 확대하는 방안 등이 담겼다. 대선을 앞둔 시점인 데다 함께 열린 토론회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당내 경선 후보들이 일제히 참석하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수험생을 중심으로 반발이 확산하자 민주당 측은 “공식 입장이 아니다”고 진화에 나섰다. 이후 문 대통령의 공약에도 이 내용은 빠졌다.

   
그러나 7월 12일 김판석 연세대 글로벌행정학과 교수가 신임 인사혁신처장에 임명되자 논란이 재차 불거졌다. 김 처장이 교수 시절 논문에서 공무원 채용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꾸준히 언급해 왔기 때문이다. 일단 김 처장은 8월 18일 기자간담회에서 “고시 제도는 좋은 전통이고, 이는 개선해서 계속 가는 게 맞다”며 속도조절을 시사했다. 당장은 아니라도 불씨는 살아 있다. 개선폭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폐지로 받아들여질 여지는 충분하다. 인사혁신처는 오는 10월 공직 인사정책 전반에 관한 인사혁신 로드맵을 마련해 공개하기로 했다.
   
9월 8일 ‘2017 이슈 배틀’ 일곱 번째 토론이 열렸다. 이날 주제인 ‘5급 공무원 공개채용시험 폐지’를 놓고 사전투표를 했다. 판정단 5명이 ‘찬성’을, 5명이 ‘반대’를 택해 팽팽하게 출발했다.
   



2 Round

“폐쇄적 공직제가 비효율 불러”
폐지 찬성으로 1명 돌아서 6:4  

◆전문가 의견 청취=찬성 측 김재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이 선공에 나섰다. 그는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 원인 중 하나가 정부의 비효율성이고, 그 출발점은 폐쇄적 공직제도”라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공무원은 정년을 보장받고, 독립된 연금 체계의 보호를 받는다. 어지간한 비위나 직무 태만으로는 그 직을 위협받지 않고, 외부와의 경쟁도 없다.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직위의 수가 줄고, 승진하지 못한 사람들은 퇴출되어야 맞지만 공무원은 예외다. 순서의 문제일 뿐 돌아가며 승진한다. 상부는 5급 공채끼리의 경쟁이고, 조직 하부에선 만성적인 인사 적체에 따라 노력할 유인이 사라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반대 측 오성호 상명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도 밀리지 않았다. 오 교수는 “현 공직 시스템상 엘리트 공무원의 충원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공무원이 9급으로 입직하면 평생 승진 가능한 목표점은 현실적으로 5급이나 4급이다. 7급도 큰 차이는 없다. 입직 후 이런 정책 결정의 중심 직위(4~5급)까지 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 과정에서 아무래도 참신함이 떨어지게 된다. 새로운 생각을 꺼리게 되고, 습관적으로 안 되는 이유를 먼저 찾게 된다. 실무 능력은 있겠지만 정책 결정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결국 후자의 능력을 갖춘 사람은 따로 뽑아야 한다.”
  
핵심인력과 주변인력이란 현 구도를 볼 때 폐지는 좀 이르다는 의견이다. 이에 김 연구위원은 “지금의 고시제도는 시험을 잘 보는 사람을 뽑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엘리트가 필요하다지만 순환 보직을 거치다 보면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가 된다. 그러니 사무관이나 서기관은 새로운 보직을 받자마자 전화기부터 들어야 한다. 곳곳에 물어봐야 해서다. 그러다 이내 다른 자리로 옮긴다. 이런 공무원에게 효율성을 기대할 수 있겠나. 부처별로 해당 업무 능력을 갖춘 인재를 투명하게 뽑는 형태로 전면 개혁이 불가피하다. 민간과 공공 부문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길을 터야 한다.”
  
그러자 오 교수는 “어떤 형태로든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의 자질을 측정해야 하고, 시험은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인 방법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사회가 성숙하고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수록 여러 의견을 들으면서도 중심을 쥐고 정책을 추진할 조정 역할이 중요해진다. 그러려면 각 이해 당사자를 설득할 수 있는 폭넓은 경험과 균형감각을 갖춰야 한다. 고위직으로 갈수록 이런 제너럴리스트로서의 능력이 중요하다. 개선은 필요하지만 부처가 인사까지 담당할 여력도 없거니와 비용을 생각하면 실용적이지도 않다.”
  
전문가가 자리를 떴다. 한 명의 판정단이 생각을 바꿨다. 5급 시험 폐지에 반대했던 판정단⑥이 “폐쇄적인 공직사회를 그대로 두고 효율성을 논하는 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찬성 입장으로 돌아섰다.
   




3 Round

“고위직 독점 끊어야 … 5·7급시험 합쳐 6급 뽑자”
“민간 채용은 한계 … 시험 빼곤 거를 방법 없다”

◆집중토론=찬성 측이 선공에 나섰다. 판정단①은 “각 분야에서 열린 사회로 나아가자는 요구가 있고, 공직사회도 마찬가지다”고 지적했다.
   
“일을 하다 보면 오류나 실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자리를 자주 옮기는 공무원은 그 책임을 가리는 게 쉽지 않다. 문제는 그 오류나 실수를 함께 감춰 준다는 점이다. 언젠가 자신의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퇴직해도 공직 근처를 맴돈다. 안에 있는 후배는 선배의 청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그 역시 자신의 미래기 때문이다. 이런 잘못된 동료의식의 출발점은 기수 문화에 있다. 크게 흔드는 수밖에 없고 5급이든, 7급이든 채용 시스템을 건드리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판정단②>
   
이에 대해 판정단⑧은 “투명성을 높이는 건 중요한 과제지만 채용 과정의 공정성이 무너지면 그게 더 걱정스러운 일”이라고 맞받았다.
   
“공모형 채용이 늘면서 민간에서 공공부문으로 넘어오는 일도 흔해졌다. 이렇게 공무원 채용 방식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그런데 전부를 그렇게 뽑을 순 없다. 수천 명을 시험도 없이 어떻게 거를 건가? 개별 채용 과정에 대한 신뢰는 또 어떻게 확보하나? 다양화된 방식 중 하나로 공채시험은 꼭 필요하다. 부처별로 자율에 맡기자는 주장도 시기상조다.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의 딸 특별채용 논란이 불과 몇 년 전이다. 중앙에서 관리해야 그나마 부처별 유착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판정단⑨>
   
판정단③은 “시험으로 5급을 뽑고, 그들이 실·국장을 한 뒤 장차관까지 맡는 나라는 드물다”며 폐쇄성을 재차 지적했다.
   
“우수한 엘리트 공무원이 한국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정보를 독점하고, 정책이 시민사회와 동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제는 분권의 시대다. 시험을 아예 없애자는 얘기가 아니라 행정고시가 고위직으로 가는 다리 역할을 하는 걸 끊자는 의미다. 우선 5급을 폐지해 7급과 통합한 뒤 6급 정도로 뽑자. 국장급 고위직은 공공과 민간의 벽을 허물어 100% 공개채용하되 우수한 공무원과 민간의 전문가가 경쟁하도록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5급으로 들어가면 당연히 고위직으로 가는 구조를 바꾸자는 얘기다.”
  
그러자 판정단⑩은 “공무원 조직의 문제는 신입 선발 방식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공시는 그나마 내가 열심히 하면 되기 때문’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공무원 시험은 하나의 채용 절차인 동시에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공직으로 입문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계층사다리가 무너지는 와중에 5급 공채까지 폐지하자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에 대해 판정단④는 “출발선에 따라 이후의 인생이 사실상 결정되는 닫힌 사회를 바꿔 보자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국은 인적자원밖에 없는 나라다. 그런데 공무원이 되기 위해 지금도 수만 명의 청년이 자신의 젊음을 허비한다. ‘공무원 시험=대박’이란 등식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잠재력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사실상 내몰리는 구조다. 합격하면 그때부터 미래가 정해진다. 7·9급으로 시작하면 서기관(4급), 5급으로 시작하면 국장급으로 퇴직하는 틀이 아예 고착화돼 있다. 이걸 흔들기 위해선 진입장벽을 없애는 게 필수적이다.”<판정단⑤>
   
최종 투표가 시작됐다. 찬성을 택했던 판정단⑦이 입장을 바꾸면서 결과는 찬성 7, 반대 3으로 바뀌었다. 판정단⑦의 공감을 끌어낸 건 판정단③의 이 한마디였다.
   
“조직 이기주의는 개인 마인드의 문제가 아니라 관성과 풍토에 달렸다. 이걸 그대로 두고선 어떠한 개혁도 불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으로 그 어느 때보다 유연함과 신속성이 중요해졌다. 지금 구조로는 공공부문이 뒷다리 잡는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제 철밥통 좀 깰 때가 되지 않았나.”




첨예한 이슈 ‘삼세판 토론’ … 합의점 찾기 실험

‘이슈 배틀’ 어떻게 진행하나

‘2017 이슈 배틀’은 배틀 형식의 토론을 통해 서로의 다름을 드러내되 합의도 모색하는 실험이다. 이를 위해 소속 대학과 전공·연령대가 다양한 10명의 교수로 판정단을 구성한다. 판정단에선 해당 이슈 전공자를 일부러 배제한다. 전문가는 각자의 소신이 확고해 토론을 해도 입장을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건전한 상식과 지적 능력을 갖춘 비전공자가 찬반 양측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내부 토론을 거쳐 입장을 정리해 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토론은 3라운드로 이뤄진다. 1라운드는 평소 판정단의 생각을 드러낸다. 2라운드에선 찬반 양측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판정단이 다시 투표한다.
   
3라운드에선 판정단이 스스로 참여해 토론한 뒤 최종 입장을 정한다. 라운드마다 입장을 바꾼 판정단은 왜 그랬는지 이유를 밝힌다. 솔직한 입장 표명을 유도하기 위해 판정 결과는 익명으로 처리한다. ‘2017 이슈 배틀’은 중앙일보와 한국사회과학협의회·안민정책포럼이 공동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이 후원하는 SSK 네트워킹지원사업단이 주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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