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봉] “전기료 누진율 내리고 최상단부 기본료 올려야 서민부담 줄어”
작성자 문화일보
등록일 2019-06-11 15: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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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너지 전문가인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달 29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숭실대 교정에서 현재 실정에 맞는 전기요금을 포함해 에너지 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조 교수는 “전문가로 구성된 독립적 기관이 전기요금을 시장논리에 맞춰 투명하게 설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전기료 개편… 조성봉 숭실대 교수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땐  
  전기료 부담 많이 줄여 주지만  
  경영난 한국전력에는 큰 부담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한 구조  
  정부 친환경에너지 정책 펼치며  
  전기료 안 올리는건 ‘이율배반’

  에너지 정책 급히 바꾸면 탈 나  
  국민-에너지 종사자 공감 필요  
  장기적인 ‘로드맵’ 만들어 가야  

  정부 ‘재생에너지 3020 계획’  
  정치적 논리로 만들어진 정책  
  정교한 접근 않을땐 ‘블랙 아웃’

  폭염이 기정사실화되는 올여름 최고 화두는 전기요금이다. 몇 년 새 지구 온난화로 가마솥더위가 일상화되면서 에어컨 등 냉방기기 사용은 이제 국민 건강권과도 직결되는 문제로 떠올랐다. 여름철 전력 수요가 큰 폭으로 뛴 만큼 매년 여름 ‘전기요금 폭탄’ 논란도 반복되고 있다. 이에 정부가 전기를 많이 쓸수록 할증 폭이 커지는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다음 달부터 개편한다. 전기료 부담을 줄여주는 것은 좋지만 수반되는 추가 비용은 경영난을 겪고 있는 한국전력공사가 떠맡게 됐다. 한전의 적자가 심해지면 결국 가계와 산업계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기후와 4차 산업혁명으로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구조로 진입했지만, 전기요금은 여전히 수십 년 전에 만든 체제에 머물러 있다. 급변하는 산업, 사회 구조를 반영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끌 수 있는 전기요금 체계는 과연 어떤 것일까. 지난달 29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숭실대 연구실에서 에너지 전문가인 조성봉(61) 경제학과 교수를 만나 ‘해법’을 들었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경제학 박사 출신인 조 교수는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기획실장·전력연구단장·선임연구위원,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거쳤다.  

  ―정부가 현행 3단계로 구성된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의 개편 방향 초안 3가지를 공개했다. 누진제에 대한 견해는.

  “개편안 중에서 누진제를 여름철에만 폐지하는 2안과 완전히 폐지하는 3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여름철에만 누진제를 완화하는 1안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올여름 소비자들의 전기요금 부담은 줄어드는 반면 누진제 완화에 따른 손실은 한전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누진제에 대한 시장 불만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 전기 사용량을 보면 가정용보다 산업용 비중이 월등히 높다.  

  실제로 산업 현장에서 쓰는 양이 많은데 인구수로 나눠버리면 가정에서 많이 쓰는 듯한 착시효과가 발생한다. 인덕션, 에어컨 보급률이 90%대인 선진국에 견줘 국내 가정용 전기 사용량은 현저히 낮다. 한국 가정에서는 취사나 난방용으로 도시가스를 주로 쓰는 편이다. 하지만 최근 에어컨과 인덕션, 건조기 등 전기를 많이 소모하는 가전제품이 늘어나고 있어 가정용 전기 사용량도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비해 전기요금 구조를 뜯어고쳐야 한다.  

  누진제가 도입될 당시 취지는 전기를 많이 쓰는 고소득층에게 요금을 많이 받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사회 구조가 빠르게 바뀌면서 누진제의 의미가 퇴색했다. 예전에는 부유층이 식구도 많고 전력을 많이 썼지만, 요즘에는 주택 문제에서 여유로운 고소득층 가정은 1∼2인 단위로 주거가 분화된 추세다. 오히려 저소득층 중 주택 한 곳에 대가족 형태로 모여 사는 가구가 늘고 있다.

  애초 누진제는 소득 재분배의 의미가 있었는데 지금은 ‘역진제(逆進制)’가 돼 버렸다. 저소득층은 전기를 마음대로 쓸 수 없어 피해를 보고 오히려 고소득층은 혜택을 보는 구조다. 소득이 없어 한계선에 있는 저소득층은 푹푹 찌는 한여름에 에어컨도 켤 수 없는 실정이다.”  

  ―바람직한 전기요금 개편 방식은.

  “현행 3단계 누진제 요금 방식에서 최상단부 1단계 구간 기본요금을 올리고 누진율은 내리는 방향이 맞는다. 1단계 구간 요금을 낮추면 3단계 구간 요금을 올려야 하는데, 1단계 구간 요금만 낮추면 한전은 큰 짐을 떠안게 되고 3단계 구간 요금을 올리면 서민들이 부담을 지게 된다. 1단계 구간 기본요금을 더 올리고 누진제를 조정해 전기요금을 걷는 구조를 고쳐야 한다. 한국 전기요금 누진율은 3배인데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의 누진율은 1.1∼4배(각 주 차등 적용), 일본이 1.3∼1.6배, 중국이 1.5배, 대만이 2.5배로 누진율이 대부분 2배 내외다.  

  장기적으로는 용도별 전기요금을 전압별 요금제로 바꿔야 한다. 현재 국내 전기요금은 일반용·주택용·농사용·심야 전력 등 용도별로 나뉘어 있다. 이를 고압과 저압에 따라 전압별로 요금을 부과하는 체제로 서서히 개편해야 한다.”

  수조 원의 흑자를 거두던 한전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이후 대규모 적자기업이 돼버렸다. LNG·태양광·풍력발전 비중을 늘리면 한전의 전력 구입비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탈원전,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추진했던 국가들이 모두 겪은 문제이기도 하다. 전기료 현실화가 불가피하지만 정부는 탈원전 정책에도 요금 인상은 없다고 공언해왔다. 조 교수의 생각이 궁금했다.

  ―한전이 옴짝달싹 못 한 채 적자가 쌓여가는 구조로 접어들었다.

  “깨끗한 에너지는 비싸다. 친환경 에너지는 비싼 만큼 전력 구입비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전기요금을 안 올리고 도저히 버틸 수 없는 구조다. 누진제와 상관없이 전기요금 자체를 올려야 한다. 정부가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펼치면서 전기요금을 안 올리겠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전기요금 인상은 정부의 친환경 에너지 정책 의지에 대한 가늠자다. 정부가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펼치려면 먼저 국민에게 미세먼지나 유해물질이 안 나오는 깨끗한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만큼 전기요금을 많이 낼 수밖에 없다고 설득해야 한다. 전기요금을 안 올린 채 친환경 재생에너지 정책을 밀어붙이겠다는 것은 정치 논리가 정책을 압도하는 것이다.”

  ―전기가 복지 서비스의 중요한 수단이란 점에서 정부의 에너지 시장 개입(가격 통제)이 명분을 얻는 것 같다.  

  “요금을 규제하면 자원 분배가 왜곡된다. 정부가 에너지 시장 자체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이원화해서 접근해야 한다. 요금으로 해결하려면 시장이 왜곡된다. 지금 전기요금으로는 한전의 투자보수율(총괄원가)도 못 지킨다. 전력 생산 비용도 보전 못 하는 수준이다. 전기사업법 시행령에는 전기요금이 투자보수율을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전기로 복지정책을 펼치고 싶다면 차라리 정부가 저소득층에게 에너지를 살 수 있는 바우처를 보조해주는 편이 낫다.”

  ―현행 전력 시장은 한전이 소매시장까지 독점한 채 정부가 전기요금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시장원리를 도외시해 법적 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전은 공기업으로 사회적 책임도 져야 하지만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된 주식회사다. 주주 이익도 대변해야 한다. 경영 환경이 좋으면 주주들에게 재정 부담이 양해될지 모르지만 지금 적자가 쌓여가고 있다. 정부가 상장회사의 가격정책을 규제하는 것은 시장경제 논리에 반하는 행위다. 정부가 계속 개입한다면 투자자들이 미국 뉴욕 법원에 소송을 걸 확률도 높아진다. 이 경우 재판에서 정부는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전기요금 정책에 개입하니깐 한전 주가는 10여 년간 3만 원 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시장이 부정적으로 본다는 의미다. 정부가 자본시장이 투명해져야 한다고 역설하면서도 선거 정국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전기요금 카드’는 내주기 싫은 거다.”

  ―탈원전·에너지 전환 정책이 정치적으로 확전돼 소모적인 논쟁도 적지 않다. 에너지 전환 정책 방향성에 대한 견해는.

  “에너지 정책은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대부분 발전소의 설비 수명이 짧게는 30년, 길게는 60년에 달한다. 원자력발전의 수명은 60년, 화력발전은 30∼40년인데 이 같은 대규모 설비를 정부 정책이 바뀌었다고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는 문제다. 설비 하나가 조 단위다. 정보기술(IT) 산업 주기는 6개월∼1년밖에 안 되지만 에너지 산업 주기는 20∼30년 단위다. 화력발전소 한 곳 짓는 데 설비와 금융자본 등이 장기 계약으로 묶여 있다. 에너지 정책을 빨리 바꿀 경우 경착륙하게 된다. 5년짜리 단기 정권이 바꿀 수 있는 정책이 아니다. 국민과 에너지업계 종사자 등 이해 당사자들이 공감대를 넓게 형성해 장기적인 로드맵을 그려줘야 한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새로운 산업들이 속속 등장하며 전력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통한 수요관리로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한 평가는.  

  “가장 좋은 수요관리는 요금 정책이다. 전기요금을 올리면 된다. 전기와 관련해 1970년대에 만든 ‘에너지이용 합리화법’이란 고전적인 법이 있다. 여기에는 에너지 절약과 수요관리가 미덕처럼 나와 있다. 클라우드, 전기차, 데이터센터, 인공지능(AI)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 현실과 맞지 않는다. 시장경제에 맡기면서 요금을 관리해야 한다. 정부 규제가 많아지면 시스템만 복잡해진다.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도 ‘수요관리’와 ‘가격 합리화’가 언급됐는데 결국 ‘립 서비스’로 끝났다. 전문가로 구성된 독립적인 기관이 전기요금을 시장논리를 토대로 투명하게 정하게끔 정부는 빠져줘야 한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3020 계획(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비율 20% 달성)’을 추진 중이다. 이 같은 정책에 대한 견해는.

  “국토, 전기 수급 등 여러 특성을 고려해 만든 게 아니라 정치 논리로 만든 정책이라고 본다. 재생에너지 수급은 불안정하다. 화력이나 원전 등 전원을 믹스해 대기전력을 확보해줘야 한다. 정교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블랙 아웃(광역 정전)’이 되기 십상이다. 이상만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정책적인 뒷받침도 전무하다. 산업구조 개편도 뒤따라야 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깨끗한 에너지를 쓰겠다고 연합을 맺고 있다. 기업이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100% 사용해 제품을 만드는 ‘RE100’이 대표적인 예다.”

  조 교수는 “현재 국내에서는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을 인증받을 시스템이 아예 없고 녹색에너지 시장은 모두 외국에 있다”며 “국내에 녹색에너지 시장을 따로 만들어주든지 한전의 판매 독점을 깨고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가 기업과 일반 소비자들과 전기를 직거래할 수 있는 구조를 허용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책 지원 없이 전 세계적 추세를 못 따라잡으면서 재생에너지 정책을 펴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잘라 말했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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