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휘] 한반도, 새로운 역사를 준비하는가?
작성자 매일경제
등록일 2018-04-27 19: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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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날이 밝았습니다. 1953년 한국전쟁 휴전 이후, 아니 1948년 한반도에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선 이래 최초의 순간입니다. 북한 지도자가 남쪽 땅을 밟는 역사적인 순간인데, 정확하게 얘기하면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남쪽으로 130m 내려온 곳으로 한국전쟁 이후 유엔 관리하에 있는 지역입니다. 유엔 관리라고 하지만 '평화의 집'이 위치한 그 땅 역시 수천 년을 이어온 한민족의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곳입니다. 판문점에 덧씌워진 안타까운 상처로 인해 역사적인 만남의 의미가 희석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서로 생각이 비슷합니다. 혹여 북한이 이번에 또 남한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쇼를 하는 게 아닐까, 이번에는 정말로 핵을 내려놓을까 하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습니다. 의도적인 고립, 군수산업 중심의 산업구조, 신격화된 주체사상, 상위 엘리트 계층만의 운명공동체, 지난 70년 가까이 북한 사회를 지탱한 이런 삶의 방식을 하루아침에 포기할 수 있을까. 판문점 남측 지역으로 내려오고, 미국과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북한 지도자를 보면서,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합리적인 의심'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이건 국가건 마찬가지인데, 모든 걸 북한 탓으로 돌리면 북한 스스로 개과천선(改過遷善)해서 핵을 내려놓고 체제 개혁을 할 때까지 우리는 그저 기다려야 합니다. 낯설어 보이지만 새로운 운명의 길을 개척해야 할 순간입니다. 지난 70년 동안 북한은 한결같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는 걸 꿈꾸며 살아왔습니다. 인민 다수가 기아에 허덕이고, 체제의 목숨을 건 핵 개발을 감행해 국제사회에서 온갖 비난을 무릅쓴 이후에야 비로소 한국과 미국의 정상을 만나 체제를 인정해 달라는 요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걸 위해서라면 장담할 수는 없지만 핵도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게 북한의 솔직한 심정일 것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걸어온 고립과 주체의 길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겠지요. 핵을 내려놓고 싶어도 의지만으로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도와줘야 합니다. 결국 북한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또 다른 합리적 의심은 당연한 우려입니다. 최초 순간에는 일괄타결로 시작하겠지만, 이행 과정에서 북한이 구실을 삼아 비핵화 트랙을 뛰쳐나갈 가능성이 도처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앞으로 불과 1년 6개월 후면 또다시 대선국면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시간은 북한 편이라는 계산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이러한 점을 모를 리가 없겠지요? 평화정착이 말은 좋지만, 결국 1민족 2국가 체제의 길을 가자는 것인가? 이번 정부 등장 이후 통일이라는 용어가 눈에 띄게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정부가 이러한 점 역시 모를 리 없다고 믿습니다. 평화가 제도적으로 정착된 다음에는 반드시 통일 얘기가 불거져 나올 것이고, 우리는 지혜를 모아 또 조금씩 그때를 전략적으로 대비하면 됩니다. 최근에 큰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3월 말 갑작스러운 북·중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북한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순간에 결국 중국이 훼방꾼이 되려나 보다 하는 아주 큰 걱정입니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 러시아, 일본 등과 정상회담을 하는 게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 문제의 '국제성'이 부각될수록 북한 정권은 약속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봅니다. '트럼프 효과'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관행에 어긋나고 외교적이지 못한 발언을 트윗으로 마구 날려 보내지만, 오히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그러한 돌출 발언들이 북한을 협상테이블에 묶어둔다는 뜻입니다. 독자 여러분께 한 가지 질문을 던져봅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 낙관적인 편인가요, 혹은 비관적인 편인가요? 북한 비핵화와 평화정착에 비관적이신가요, 아니면 낙관적이신가요? 살다 보면 비관적인 예감이 더 잘 들어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더 기억하셔야 합니다. 역사의 커다란 변화와 희망의 줄기는 언제나 낙관주의자들 손에 의해 일궈져 왔습니다. 오늘 판문점에서 희망을 지켜봅시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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