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휘] 주한 美대사 대리체제 언제까지
작성자 매일경제
등록일 2018-03-16 14: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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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국대사는 화려하면서도 한미 간 외교관계의 운명을 가르는 고뇌를 온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자리이다. 한국의 현대사에서 경험했던 격동의 순간마다 서울에 근무하는 미국대사들은 한미 양국 사이의 심리적 거리는 물론 우리가 운명처럼 마주했던 희망과 절망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주인공이기도 했다. 1949년 최초로 부임한 존 무초 대사를 필두로, 4·19혁명의 소용돌이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시선을 맞췄던 월터 매카너기 대사,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정권에 맞섰으면서도 군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윌리엄 글라이스틴 대사, 최근에는 현재 미국에서 여전히 왕성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2005년 9·19 남북공동성명의 주인공인 크리스토퍼 힐 대사, 이름을 모두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국의 운명에 이들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이후 주한 미국대사 인선이 아직까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마크 리퍼트 전임 대사가 본국으로 돌아간 게 작년 1월 20일이니까, 주한 미국대사 자리는 1년2개월째 공석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1949년 이후 가장 긴 시간 동안의 빈자리이다. 더욱이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갑작스럽게 물러나고, 마이클 폼페이오 신임 장관이 내정되면서 주한 미국대사 자리가 비로소 주인공을 찾게 될지 아니면 오히려 더욱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될 것인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작년 말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가 내정됐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대사 지명이 철회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한반도 정책의 본심이 무엇인지는 더욱 가늠하기 어렵게 된 것도 사실이다. 과거 한때 주한 미국대사가 무소불위의 권위를 가졌던 적이 있기도 했다. 1981년부터 1986년까지 5년 넘게 재임했던, 현재까지 최장수 미국대사 기록을 가지고 있는 리처드 워커 대사는 5공화국 당시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인해 소원해진 한미 관계의 틈바구니에서 한껏 파워를 발휘했다. 지인들 사이에서 `딕시`라고 불렸던 워커 대사는 물론 `세니`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그의 아내 셀리노 워커 여사마저도 당시 한국의 지도층에게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한 바 있다. 원래 사우스캐롤라이나대 교수 출신인 워커 대사는 2003년 81세의 나이로 타계했는데, 필자는 서거 얼마 전이었던 2002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도인 컬럼비아에 위치한 고인의 자택을 방문한 적이 있다. 고인의 따뜻한 미소와 함께 당시 자택 곳곳에는 진귀한 골동품을 포함해 한국에서 받은 값비싼 선물이 즐비했던 사실에 적잖이 놀랐던 적이 있다.

사실 요즘은 대사의 역할이 과거에 비해서 많이 줄어든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정상들 간 전화 통화가 시도 때도 없이 수시로 이뤄지고, 우리 대통령만 해도 1년에 최소 10여 차례의 해외 방문을 통해 소위 `정상외교`를 진두지휘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사직이 가지는 상징성을 무시할 수는 없는 터이고, 지금처럼 한반도 운명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는 순간에는 한미 양국 간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의사소통과 정책 조율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도 지금 이 순간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 대리가 역할을 잘 해주고 있어서 크게 염려하지 않는다. 그는 유창한 한국어 솜씨는 물론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대사관 업무를 잘 이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래전 유학 시절 미국 신문에서 `다른 사람이 어떤 호칭으로 불러줄 때 가장 기분이 좋은가`라는 조금은 흔치 않은 설문조사 관련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1등은 목사님이었고, 조금은 놀랍게도 2등이 대사님이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대사님`, 이렇게 불러주면 몹시 기분이 좋아진다는 뜻이니, 이는 대사라는 직책이 가지고 있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사회적 존경과 막중한 책임감의 반영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수개월은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지금이나 미래에나 한미동맹의 튼튼한 기초에는 아무런 차질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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