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찬] 국가 전략 부재…중장기 아젠다 전담할 '미래전략원' 신설해야
작성자 한국경제사회
등록일 2018-03-28 13:4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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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중장기전략위원장 맡은 최종찬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

눈앞 성과 중시하는 정책 선호…중장기 과제는 뒷전
물적 인프라 앞서 있지만 사회자본은 한참 뒤처져
4차 산업혁명에 무방비…규제·인재육성책 새로 짜야
정부 내에 국가 장기전략을 고민하는 조직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 4월 ‘중장기전략위원회’가 처음 발족했고, 2014년 11월부터는 2기 위원회가 활동해왔다. 1, 2기 위원회는 각각 ‘국가 중장기 발전전략’ 보고서도 냈다. 하지만 이 조직이 뭐하는 곳인지, 정부 정책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는 정부 내에서조차 무관심하다. 두 차례에 걸쳐 낸 두꺼운 보고서 역시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제3기 중장기전략위원회’가 최근 출범했다. 민간 위원장은 정통 경제관료 출신인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현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이 맡았다.

최종찬 국가 중장기전략위원회 위원장은 “나라 안팎의 환경이 급변하는 만큼 국가 미래를 연구하고 중장기 정책과제를 발굴하는 일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크다”고 강조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최종찬 위원장은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급변하는 위중한 시기이고 특히 내년은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는 등 대한민국 미래 운명을 좌우할 매우 중요한 해”라며 “국가 미래를 연구하고 중장기 정책과제를 발굴하는 일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장기 전략 수립만 전담하는 별도의 ‘미래전략원’ 같은 조직을 신설하는 방안을 적극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위원장을 지난 22일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집무실에서 만났다.

▷3기 중장기전략위원회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됩니까.

“국가적 현안인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 4차 산업혁명, 사회적 자본 등을 연구해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할 생각입니다. 정부와 민간이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아야 하는데, 우선 민간에서는 경제 복지 노동 교육 미래학 인공지능 부동산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 19명이 참여합니다. 여기에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20여개 연구소 소속 40여명의 박사로 구성된 ‘중장기전략작업반’이 동시에 가동됩니다.”

▷우리나라 국가 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5~10년 뒤 한국이 뭘 먹고 살아야 할지를 크게 보고 긴 안목에서 만들어지는 정책이 별로 없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당장 급한 현안에만 집중하며 정책 시야가 너무 단기화되는 경향이 커지고 있어요.”

▷정부 정책이 단기화된 이유는 무얼까요.

“직접적으로는 경제기획원이 1995년 재무부와 통합돼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이 생겨 중장기 정책 기획 전담 부처가 사라진 영향이 큽니다. 여기에 5년마다 정권 교체가 반복되면서 정책의 단기화 경향이 가속화됐어요. 새 정부는 늘 새 국정 과제를 정합니다. 그러다 보면 대통령과 장·차관의 ‘정책 시간표’는 구조적으로 3~4년을 넘어설 수 없어요. 특히 정권 후반으로 갈수록 대통령 임기 내 효과가 가능한 단기 정책만 선호하고 중장기 과제는 뒷전으로 밀리게 됩니다.”

▷과거엔 어땠습니까.

“1980~1990년대 한국이 수출 급성장 등을 통해 고속 성장한 것은 1980년대 초부터 옛 경제기획원이 개방과 규제 완화라는 큰 방향의 국가 아젠다를 세워뒀기에 가능했습니다. 여기에 맞춰 옛 재무부, 상공부, 농림부 등은 금융 자유화, 무역 자유화, 농수산물 수입 확대 등 세부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면서 나름 성공을 거둔 거죠. 하지만 이들 부처에선 금융 자유화나 무역 자유화 등에 내심 반대가 컸습니다. 그럼에도 국가 정책의 큰 방향이 개방과 규제 완화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이들 부처도 어쩔 수 없이 방향에 맞춰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지금도 기획재정부 업무 분장상으로는 경제부총리가 중장기 전략까지 세우도록 돼 있기는 합니다.

“그러기엔 지금의 경제부총리는 너무 바빠요. 예산과 재정, 세제, 국제금융은 물론이고 구조조정이나 부동산대책 같은 긴급 경제 현안까지 다 챙겨야 합니다. 중장기 정책은 구조적으로 부총리의 관심 사항에서 후순위로 밀려날 수밖에 없어요. 당장 처리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요. 그나마 기재부가 중장기전략위원회를 구성해 꾸준히 가동하는 것은 잘하는 일입니다만, 국가의 장기 미래 전략 수립 역량을 완전히 복원하기엔 역부족입니다.”

▷그럼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중장기 전략을 고민하려면 현안 업무에 얽매이지 않는 정부 조직이 있어야 합니다. 옛 경제기획원 모델의 장점을 살려 중장기 전략 수립만 전담하는 별도의 ‘미래전략원’ 같은 조직을 신설하는 방안을 적극 고민해야 합니다.”

▷중장기전략위원회 활동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습니까.

“출범 후 민간위원들이 수차례 만나 3기 위원회가 집중적으로 다룰 3대 분야를 확정했어요. 4차 산업혁명과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 사회자본입니다. 내년 1월 중순께 초안이 나올 예정입니다.”

▷3대 과제 중 특히 관심을 두는 분야가 있는지요.

“모두 중요한 분야긴 하지만, 저는 사회자본 형성이 시급하다고 봐요. 사회자본은 사회 구성원 간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사회의 신뢰와 투명성을 높이는 무형의 인프라입니다. 한국은 도로·항만 같은 물적 자본은 세계적 수준이지만 사회자본은 한참 뒤처져 있어요. 기업의 분식회계와 허위공시부터 법을 지키지 않는 불법 폭력 시위, 수많은 기업 규제 등은 모두 사회자본이 부족해 발생하는 국가비용입니다. 그 규모가 엄청나요.”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변화에 준비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거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줄 겁니다. 가령 무인자동차 등장으로 자동차산업에 대변혁이 오는 것은 물론 운전기사란 직업이 없어져 일자리 시장도 변하게 됩니다. 차 사고가 급감해 보험사도 많이 파산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와요. 4차 산업혁명 파급 효과를 지금부터라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동시에 일자리 정책과 근무시스템 같은 노동정책, 기업 규제정책 전반, 교육 및 인재육성정책을 모두 새로 짜야 합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도 걱정이 큽니다.

“지난 10년간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150조원이 투입됐다고 합니다. 정작 문제를 해결하는 효과는 별로 없었다는 평가가 많아요. 인구 정책을 추진하는 컨트롤타워가 약했던 게 그 원인 중 하나라고 봅니다. 인구 문제는 출산·결혼은 물론이고 주택, 이민, 세제, 일자리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해 종합 처방을 내놔야 해결될 겁니다. 보건복지부가 인구 정책을 주도하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최종 보고서는 언제 나옵니까.

“내년 3월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미래 정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을 최대한 많이 담을 생각입니다. 하지만 보고서 내용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바로 공무원들의 공감대 형성입니다. 아무리 ‘쌈박한’ 보고서라도 그걸 실행해야 하는 공무원들이 ‘정말 필요하다’고 동의하지 않으면 정책 수립 과정에 반영되지 못하고 결국 사장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 최종찬 위원장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짠 EPB의 마지막 경제기획국장

옛 경제기획원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경제관료다.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1971년 행정고시 10회에 최연소로 합격했다.

세 번의 진보정권 '산증인'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 업무를 담당한 경제기획원의 마지막 경제기획국장과 1995년 초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통합으로 신설된 옛 재정경제원의 첫 번째 경제정책국장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초대 건설교통부 장관을 맡았다. 최종찬 위원장은 자신의 공직생활에 대해 “장관 때를 제외하면 공직 생활의 대부분을 기획 종합 총괄 조정 등 4개 단어가 들어간 부서에서 보냈다”고 했다.
공직에 있을 땐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논리가 정연하다는 평을 받았다. 부드러운 스타일이지만 건설교통부 장관 재직 땐 철도노조 파업에 맞서 ‘원칙 고수’를 내세우며 노조의 항복을 받아냈을 정도로 고집도 만만치 않다는 평가를 얻었다.
공직 은퇴 이후에도 건전재정포럼 대표, 선진사회만들기연대 공동대표 등을 맡아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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