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 "해외 연구진이 앞서는 걸 구경만 하는 신세"
작성자 조선일보
등록일 2018-08-06 13:3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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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르게 늘어온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출이 문재인 정부 들어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R&D가 경제성장의 동력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다. R&D 지출이 그간 비대하고 비효율적이었다는 현 정부 주변의 인식도 감지된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R&D 효율화 방안은 연구환경 개선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만, R&D 예산 동결 시대를 대비한 '허리띠 조르기'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 와중에 지난달 2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여야 의원들은 사이비 해외 학술대회에 참가한 소수 연구자들의 행태를 질타했다. 다음 날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찾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체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언급됐다고 한다.

국민의 세금인 연구비가 낭비성 외유에 쓰여서는 안 되며, 과학기술계의 깊은 반성과 자정(自淨)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일을 계기로 정부가 '가도 되는 학회와 가면 안 되는 학회'를 나열하는 새 규제를 내놓을 공산이 큰데, 이렇게 되면 학술 교류 위축 등이 우려된다. 특히 방만한 연구관리를 빌미로 윤리적, 형식적 차원의 규제를 늘린다면 득(得)보다 실(失)이 훨씬 더 클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차고 넘치는 R&D 관련 규제를 줄이고 개선해야 하는 마당에 거꾸로 개악(改惡)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주지하는 대로 세계 최악의 규제 강국이다. 단적으로 자율주행차·빅데이터·핀테크·블록체인 같은 신기술과 공유경제 활성화에 직결되는 앱기반 공유 서비스 관련 규제 완화 논의가 한참 요란했지만, 지금까지 속시원하게 해결된 것은 전무(全無)하다. 오히려 해당 분야 기업과 인재가 미국 실리콘밸리나 일본·중국 등 외국으로 가는 행렬이 최근 봇물을 이루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올해 일본에 블록체인 관련 자(子)회사를 세우고 싱가포르에 가상 화폐 거래소를 연 게 대표적이다. 이대로라면 국내 기술기반 창업 생태계는 고사(枯死) 위기에 몰릴 것이고, 신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도 요원하다.

신기술의 전(前) 단계인 연구개발 분야의 규제는 더 심각한 무관심과 개혁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황우석 사태를 겪으며 정부가 강화한 생명윤리 규제의 경우,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하다.

이 때문에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은 최근 국내 규제를 피해 미국에서 실험을 해야 했다. '유전자 가위' 등 첨단 바이오 분야 연구자들이 "우리는 해외 연구진이 앞서나가는 걸 구경만 하는 신세"라고 한탄할 정도다.

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상용화·임상 단계에서 규제는 불가피하더라도, 최소한 연구는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업과 연구자들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연구비 회계 같은 연구관리 방면에서도 법령부터 관련 내규까지 규제가 단계별로 복잡하고 부처마다 제각각이어서 대대적인 정비가 시급하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앞으로 스스로 신기술을 내지 못하면 선진국 뒤꽁무니만 쫓으며 기껏 이류로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가장 기본이지만 정부는 과학기술자들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정책의 초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현장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R&D 개선 장치를 마련해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과학기술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해 규제를 유연하게 취사선택하는 친(親)시장적 실용 마인드가 절실하다. 일례로 지역에 따라 규제를 탄력 적용해 민감한 주제의 연구나 실생활 방면의 실험적 시도 등을 허용해볼 만하다.

[박상욱 서울대 교수·과학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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