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휘] 월드컵과 국가주의, 그리고 한반도
작성자 매일경제
등록일 2018-08-14 14:5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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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구촌 큰 축제의 하나인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축구 경기를 시청하느라 밤잠을 설친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고, 예상과 다른 승패 결과에 마음을 졸였던 국민들도 많이 계셨을 것이다. 월드컵은 전형적인 국가 대항전이다. 올림픽이나 각종 세계선수권대회처럼 개별 국가를 회원국으로 둔 국제단체들이 주관하는 행사이다 보니, 경기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함성 속에는 국가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걸러진 다양한 감정들이 표출되게 마련이다. 16강전에서 일본이 선제골을 넣고 한참 후에 벨기에가 역전골을 성공시키자, 이를 중계하던 해설위원의 입에서 저절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온 에피소드에는 뭐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우리의 복잡한 심정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이번 러시아월드컵에서는 남미 강호들이 일찍 탈락하는 특징을 보였다. 4강에 오른 팀은 모두 유럽 국가들이었고, 8강에 올랐던 팀 중에서도 남미 국가는 두 개뿐이었다. 그런데 필자에게는 유럽 국가들 간 경기에서 더욱 열기를 뿜었던 관중석의 응원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유럽은 소위 국경을 초월하는 지역통합이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앞선 곳이다. 유럽인들의 마음속에는 영국, 프랑스, 벨기에 사람이라는 생각만큼이나 유럽인이라는 정체성 또한 매우 강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 경기만 놓고 보자면, 전통적으로 축구 경기가 가지는 특징 때문인지는 몰라도, 국가 대 국가 대결의식은 여전히 강한 것으로 비쳐졌다.

지역통합에 관한 한 동북아는 매우 더디다. 독자 여러분들 중에는 스스로 한국인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동북아인'이라는 정체성을 느끼면서 살고 있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 중국과 일본의 경우에도 동북아인으로서의 자부심을 함께 간직하면서 지역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자주 느끼는 점이지만, 세계 사람들이 유럽인들에게는 보통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서유럽 출신이세요?" 혹은 "남부 유럽 출신이세요?" 하지만 우리를 보고는 어느 외국인도 "동북아 출신이세요?"라고 묻지 않는다. 대신 "한국인이세요?" "중국인이세요?" "일본이세요?" 질문은 언제나 이렇게 던져진다.

이 문제를 북한 문제에 적용해 보면 우리가 직면한 상황은 좀 더 복잡해진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태도가 다소 미심쩍고 비핵화를 위한 조치가 영 굼뜬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지금의 대화 국면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결국 어떤 형태로든 '비핵화-평화 국면'이 가시화될 것인데, 남과 북이 함께 만드는 협력과 평화를 주변국들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최악의 경우 주변국들이 한반도 평화 만들기 과정에 훼방꾼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때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바로 북한 문제 해결 과정에서 가능한 한 국가주의적 입장을 배제하고, 동아시아 및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와 비전에 맞춰서 한반도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두 개의 큰 과제를 목전에 두고 있다. 한국적 힘과 지혜를 키워서 주변국들의 이기심과 방해를 효과적으로 막아야 한다. 어차피 우리가 미국, 중국, 일본을 압도하는 힘을 가지는 게 어려운 일이라면, 오히려 가장 한국적인 특성이 강한 외교자원을 개발하고 확보해야 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북한과의 대화 및 평화 정착의 목표는 주변국들을 이기기 위함이 아니라는 점이 제시되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는 일찍이 아시아가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로의 안내라는 메시지가 관련국들에 분명하게 전달되어야 할 것이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우리 정부는 2030년 월드컵 개최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우 흥미롭게도 북한과 한·중·일을 포함한 '동북아 4국 공동 개최'가 기본 아이디어라고 한다. 2030년이면 앞으로 12년, 그때까지 북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어 우리가 그토록 바라왔던 평화가 정착될 수 있을까? 월드컵의 함성 속에 한반도에서 발산하는 평화의 메시지가 분명하게 실릴 수 있을까? 또다시 새로운 희망을 품어본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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