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 혁신성장, 구호에 그칠 조짐 보인다
작성자 문화일보
등록일 2018-08-21 15:5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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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과학정책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들이 16일 청와대 회동 때 규제혁신 법안을 조속히 처리한다는 데 합의했다. 때늦은 감이 있으나 환영할 만하다. 혁신성장은 소득주도 성장처럼 어려운 신개념이 아니다. ‘혁신의 선지자’라 불리는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일찍이 혁신이 경제성장의 동력임을 지적했고, 주류 경제학계도 이에 동의한 지 오래다.

문 정부가 설정한 성장의 두 축을 보자. 먼저, 소득주도 성장은 부의 재분배에 초점을 맞추고 소비 진작과 기회 창출을 통해 경제 활성화를 꾀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집안에서 음식을 고루 나눠서, 잘 먹지 못해 작았던 식구의 몸집을 키우면 가세가 나아진다는 것이다. 혁신성장은 투자, 양질의 노동력, 연구·개발(R&D)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의미의 성장론이다. 먹거리를 더 많이 만들고 바깥 장터에 내다 팔아 남보다 잘살자는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론에는 진보의 가치가 투영돼 있다. 반면 혁신성장론에는 좌우가 없다. 혁신성장 담론은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는 ‘차세대 성장동력’ ‘국가 혁신체제 구축’으로 나타났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녹색성장’, 박근혜 정부에서는 ‘창조경제’라고 불렸다. 정권에 따라 용어는 바뀌었지만, 이 개념들 모두 여전히 현역이다. 문 정부의 신재생 에너지 확대 정책은 녹색성장, 창업지원 정책은 창조경제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혁신성장은 과학기술 R&D와 기술혁신, 그리고 기업 활동과 산업에 관한 것이다. 말하자면, 실물경제와 성장잠재력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산업이나 과학기술 전담 부처가 주무를 맡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문 정부에서는 혁신성장을 책임져야 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가 통 보이지 않고, 야심차게 출범시킨 4차산업 혁명위원회도 존재감이 약하긴 매한가지다. 혁신성장론의 중심에 놓여야 할 과학기술혁신, 산업정책은 뒷전이고 대통령의 시야에서도 비켜나 있는 듯하다.

연구 현장의 목소리를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자리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은 얼마 전 기자들을 만나 “(청와대) 과기보좌관 목소리가 얼마나 위로 올라가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하고, 해외 학술지에 한국의 R&D 개혁을 주장하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443일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과기자문회의에 참석했다. 소통이 부족하고 논의도 빈약하다. 혁신성장을 부르짖는 정부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세간에는 산업부는 탈원전에, 과기정통부는 연구자 달래기에, 중기부는 부처 존속을 위한 대형 사업 기획에 매몰돼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돈다. 엄한 오해이기를 바란다.

혁신성장 없이는 일자리도 소득주도 성장도 공염불이다. 최저임금 수용 거부 사태에서 드러나듯이 새로운 부가가치의 창출, 기업의 성장, 신규 일자리가 뒷받침하지 않는 파이 나누기는 폭탄 돌리기와 다를 바 없다. 각종 경제지표에 이미 빨간불이 들어왔다. 중국의 추격이나 일본의 부활을 들먹일 것도 없다. 지난 세월 피땀 흘려 벌어 놓은 것으로 버티는 건 금방 끝이다. 미래 성장잠재력 확보에 나서지 않으면 머잖아 엎어지는 것이 자명하다.

과학기술혁신·산업정책에 기반해 손에 잡히는 혁신성장 전략과 정권 후반기를 위한 혁신 정책 거버넌스를 고민할 때다. 민생 걱정에 모처럼 손을 맞잡은 여·야·정이 혁신성장을 단단히 챙겨서 일자리 창출과 산업 경쟁력 회복과 신산업 육성에서 실질적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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