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휘] 한반도 체스판에서 승리하는 법
작성자 매일경제
등록일 2018-09-03 13: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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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이후 북한 비핵화 과정에 답답한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기대하던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차츰 우려와 걱정이 쌓여가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전쟁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전쟁 상태를 먼저 종식시켜 달라는 북한 입장이 옳은 것인지, 그건 싱가포르 회담에서 충분히 약속했으니 비핵화의 실질적인 조치를 먼저 취해달라는 미국의 입장이 옳은 것인지 선뜻 판단하기 어렵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약속이 그저 속임수만은 아닌 나름 진정성이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도대체 왜 이렇게 속 시원한 조치들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

더 늦기 전에 현 상황을 점검해 보자. 2018년의 시작과 함께 6월 미·북정상회담에서 4개 항의 합의가 이뤄지기까지의 일들은 대체로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미·북 정상이 만나 4·27 판문점회담에서 합의한 연내 종전선언을 확인했으니, 남·북·미 3자 모두 연내 종전선언에 대해 합의를 이뤘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6·12 미·북정상회담 직후부터 상황이 조금씩 꼬여가기 시작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싱가포르 회동 이틀 후인 6월 14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예방하고 회담 결과를 설명한 바 있다. 그리고 닷새 후인 6월 19일 김 위원장은 또다시 전격 중국을 방문해 올해에만 벌써 세 번째 북·중정상회담을 갖게 된다. 자연과학의 영역이 아니라서 무 자르듯 딱 부러지게 인과관계를 정리할 수는 없으나, 3차 북·중회담 이후 북한의 반응이 조금씩 예상을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7월 5일자 일본 아사히신문 보도에 의하면 3차 북·중정상회담에서 향후의 미·북대화가 너무 속도를 내지 않도록 합의했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인지 확신할 수는 없으나, 7월 6일 세 번째로 평양을 찾은 폼페이오 장관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아무런 성과 없는 빈손 귀국 논란을 빚게 되고, 이와 맞물려 김 위원장의 생각과 계산이 매우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한 것 아닌가 하는 추론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짚어 봐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폼페이오 장관이 시 주석을 만난 6월 14일 바로 다음날, 그리고 김 위원장이 세 번째로 베이징을 방문하기 나흘 전이었던 6월 15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대미 수출품 500억달러어치 상품에 대한 25% 관세 부과 조치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 미국이 추가로 결정한 관세 조치와 미·중 간 무역전쟁의 내용 역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북한 문제가 미·중 간 세력다툼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지만, 현시점에서 무역전쟁이라는 매우 구체적인 대결장 위에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문제가 돼 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한반도 문제는 복잡하고 거대한 체스판이 됐다. 그사이 언론에서는 '미·북 간 기(氣)싸움이 본격 전개되었다' '종전선언의 시점이 문제다' '김정은 위원장의 생각이 바뀐 것 아닌가' '미국이 대국(大國)답지 못하다', 이런 각종 분석과 설명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시간으로 8월 24일 폼페이오 장관의 네 번째 평양 방문을 전격 취소했고, 이와 연관해 시 주석의 북한 방문, 북한의 9·9절 행사, 문재인 대통령의 북한 방문 등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중요한 일정들이 불투명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고차원의 한반도 체스판에서 승리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현재의 북한 핵능력을 후퇴시키는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와 종전선언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둘째, 중국에 '미국과 우호적이고 핵을 갖지 않은 북한'과 '미국과 적대적이고 핵을 보유한 북한'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라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지는 그 최후 순간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의 속내와 이해타산을 정확하게 읽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수십 년 동안 핵보유가 생존이라고 믿었던 북한을 상대로 핵폐기가 생존이라고 설득해야 하니 이보다 어려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한반도라는 전략적 요충지를 서로 뺏기지 않으려는 미·중 경쟁 구도를 우리에게 유리한 판으로 만들어야 하니 이 또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문재인정부의 운전자 역할론이 드디어 진정한 시험대에 오르는 순간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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