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원]한국판 뉴딜, 엉뚱한 데서 삽질하지 말자
작성자 조선일보
등록일 2020-05-20 15:24:33
조회수 26
추천수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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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진료·교육에 대한 규제 원위치하면 인프라 구축한들 무슨 의미 있나
첨단 산업 공장보다 관광 등 피해 업종 일자리 필요
제로페이처럼 민간 영역엔 끼어들지 말아야

2000년대 들어서 역대 정권이 모두 미래 성장 동력 창출과 괜찮은 일자리 만들기에 실패해 왔다. 이 기저 질환에 시달리는 중에 코로나라고 하는 미증유의 재난이 덮치자 4월 고용 통계에서 대량 실업이 가시화되고 있다. 취업자 48만명 감소는 60대 이상에서 27만명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60세 미만에서 75만명이 줄어들었다는 말이다. 모골이 송연하다.

대통령은 "하나의 일자리도 반드시 지키겠다"고 하고, 정부는 디지털 인프라 구축, 비대면 산업 육성, 사회간접자본(SOC)의 디지털화를 주축으로 하는 "한국판 뉴딜"을 위한 3차 추경을 예고하고, "첨단 산업의 세계 공장"을 만들겠다고도 한다. 해야 할 일들이다. 정말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가지 조언하고자 한다.

불행한 일이지만 이 분야들은 데이터 활용에 대한 규제가 없다시피 한 미국·중국에 벌써 한참 뒤져 있다. 최근 데이터 3법이 통과되어서 좀 고무되기는 했지만 업계에서는 벌써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디테일에 숨은 악마"를 만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원격진료 인프라 구축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데,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서 풀어준 원격진료와 온라인 교육에 대한 규제를 다시 원위치한다면 인프라는 구축해서 뭘 하겠다는 건가? 이 분야들에서 미국과 중국이 우리를 한참 앞서나가고 있는 것이 나라가 돈을 퍼부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혈세를 허비하지 않으려면 "미국이나 중국에서 가능한 일은 한국에서도 모두 가능하게" 해 주고 나서 할 일이다.

시간도 덜 걸리고 재정을 투입하지 않아도 되는, 즉 민간에서 해 보겠다고 하는데 규제 때문에 못 하는 사업이 즐비하다. 이 해묵은 과제들을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한국판 뉴딜은 전 정부들의 녹색 성장, 창조 경제의 전철을 밟을 것이다. 모두가 임기 중 열매를 맺을지조차 불확실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디지털도, 첨단도, 녹색도, 창조도 아니어도 좋으니 당장 투자가 이뤄지고, 당장 "괜찮은" 일자리라도 만들 수 있는 이미 있는 사업들을 서둘러야 한다.

한국을 첨단 산업의 세계 공장으로 만들겠다는 것도, 이번 코로나 사태로 결정적 타격을 입은 것은 관광·전시·회의(MICE), 공연, 스포츠, 교육, 음식, 숙박, 의료 등 대면 서비스 산업들이고 그 종사자들이 가장 많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동문서답같이 느껴진다. 이 업종들도 디지털화, 스마트화해서 나쁠 것은 없겠지만 디지털도 스마트도 아니더라도 더 빨리, 더 확실하게 효과가 있을 대규모 투자사업들을 이 분야에서 실행해야 한다. 일자리는 여기서 없어졌는데 더 좋은 일자리를 저기서 만들겠다고 할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좋은 일자리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첨단 산업의 좋은 일자리는 기업이 알아서 만들고 유능한 사람들이 알아서 취직한다. 최저임금밖에 못 받는 비정규직이라도 취직을 했으면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런 일자리들이 왜 없어지고 왜 더 생기지 못하는지를 살피는 것이 나라가 할 일이다.

규모를 미리 정해놓고 돈 쓸 데를 억지로 만들어 내는 폐습도 탈피해야 한다. 해볼 만한 일,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정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인가를 반드시 따져야 한다. 민간이 할 수 있는 일을 공공이 나서서 하는 것은 적자 정부가 해서는 안 될 낭비다. 예컨대 5G 네트워크 고도화, AI 인프라 확충 같은 것은 인프라라는 이름 때문에 공공이 투자해야 할 것 같지만 대부분 통신회사나 관련 기업에 맡기면 된다. 서민 생계비 경감이라는 명목으로 걸핏하면 통신 요금을 깎는 "적폐"나 없애 주면 된다.

이번 추경도 그 재원을 대부분 국채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국채 비율의 한도가 40%냐 60%냐를 따지지는 않겠다. 그러나 어딘가에 외국인 투자 자본이 빠져나가고 환율이 폭등하는 임계점이 있을 것이다. 국가 채무 비율이 10%밖에 안 되더라도, 비록 전시라고 해도, 나랏돈은 안 써도 될 데에 써서는 안 된다.

또 민간이 해도 되는 일에 공공  이 나서는 것은 서울시 제로페이 등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필연적으로 불공정 경쟁이 되고 민간 일자리를 파괴할 소지도 크다. 자고로 공공이 민간보다 효율적이기는 어렵다. 민간에 맡길 수 없는 일만 공공이 하면 된다. 잘 판단이 안 선다면 쉬운 기준이 있다. 미국·중국에서 나라가 돈을 댔다면 우리도 나라가, 기업 돈으로 한 일은 우리도 기업이 하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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