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원][朝鮮칼럼 The Column] 기업이 주도하는 노동 개혁
작성자 조선일보
등록일 2020-07-06 14:27:55
조회수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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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기저 질환에 오래 시달리던 나라의 고용이 코로나 사태로 치명타를 입고 있다. 5월 50대 이하 취업자가 작년 같은 달보다 69만명이나 줄었고, 아직 취업자로 계산되고 있지만 다시 직장으로 돌아간다는 보장이 없는 일시휴직자가 102만명, 실업자로 계산되고 있지 않은 구직단념자가 58만명이다. 무섭다.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에서 긴급재난지원금, 한국형 뉴딜에 이르기까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수를 살리겠다고 발버둥치는 것은 기업(영세 자영업자도 기업이다!)의 투자를 일으켜 일자리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나랏돈을 풀어서 내수를 살리기는 원래 쉽지 않지만(일본이 이미 확인했다) 우리나라는 철옹성 같은 규제, 주요 서비스 산업의 수익성을 파괴하는 가격 규제, 어떻게든지 사람을 덜 쓰려고 노력하게 만드는 경직적인 노동시장을 그대로 두고서는 내수가 일어난다 해도 투자와 고용으로 이어질 것 같지 않다. 전 정부들이 한결같이 고용 창출에 실패한 이유들이 모두 그대로 있다.

그중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전 업종에 무차별적인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장애 요인인데, 양대 노총은 코로나 사태로 도산 일보 직전에 있는 기업들을 도와줄 때조차 고용 유지를 조건으로 해야 한다고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역대 정부와 국회는 양대 노총이 이미 취업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주장하는, 그래서 노동시장 경직성을 더 굳히는 일은 열심히 했지만, 미취업자를 위한 일자리 만들기에 도움이 되는 노동시장 유연화는 열의를 보인 적도, 성과를 올린 적도 별로 없다. 기업의 자구 노력이 절실한 까닭이다.

우선 대기업들부터 공채 제도를 폐지하고 채용을 최대한 개별화해야 한다. 연간 필요한 인력을 졸업 시즌을 전후해서 한꺼번에 뽑아서 그룹사에 배치하고 같은 월급을 주는 현재의 채용 방식은 노동시장을 경직화하는 요인이다.

선진국의 큰 조직들은 (공공 부문까지도) 부서장들이 채용 권한을 가지고 필요할 때 필요한 사람을 뽑아서 쓰고 보수 수준도 개별적으로 정한다.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동료들의 월급이 얼마인지도 모른다. 유연한 노동시장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채용, 인사 관리에 비용이 좀 더 들 수도 있지만 해고가 자유롭지 않은 나라에서 채용이라도 신중하게 해야 할 터인데 공채라는 이름으로 채용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회사의 경영에 가장 도움이 되는 사람을 뽑을 자유, 회사에 평생 기여를 한 애사심 있는 근로자의 아들을 채용해 줄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할 정도로 공채 제도에 좋은 점이 많을까?

일류 대기업들이 공채를 폐지하고 중소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부서별로, 개별적으로, 수시로, 각각 다른 임금 수준에 채용하면 또 다른 이점도 있다. 중소기업이 훈련시켜 놓은 인력을 뽑아 간다는 비난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은 좋은 인력을 몇년이라도 써 볼 기회를 가지게 되고, 좋은 회사에 뽑혀 가려고 더 열심히 일을 할 것이고, 대기업에 자기 회사 출신 직원들을 심어 놓아서 득이 될 일도 많을 것이고, 중소기업에서 근무도 안 해보고 싫다는 사람들을 붙잡아 놓을 기회라도 한번 가질 수 있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가 많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호봉제를 폐지하고 연봉제, 성과급, 직무급 등 다양한 임금 체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임금 체계가 유연하면 굳이 해고를 해야 할 이유도 많이 줄어든다. 이미 대부분의 기업에서 상위 직급은 연봉제를 적용하고 있고, 기업의 30% 정도는 호봉제를 완전히 폐지했다. 아직 경직적인 임금 체계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경영자들도 태만했다는 증거다.

국회는 2013년 정년 60세 의무화 법을 통과시키면서 19조의 2를 신설하여 "임금 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였다. 여기서 임금 체계의 개편은 호봉제 폐지와 연봉제 등 유연한 임금 제도의 도입을 의미하고, "필요한 조치"는 청년 채용 절벽을 완화하기 위한 임금피크제 도입을 의미한다. 경영자도, 노조도, 정부도 국회  가 만든 법을 무시했다. 연장된 기간의 임금 30% 삭감과 청년 채용 의무, 연봉제, 직무급, 성과급 중심의 새 임금 체계의 도입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은 국회에 원죄가 있음은 물론이다.

국회와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해서 경영자의 무성의가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기업에서 시도하고 있는 공채 폐지와 임금 체계 유연화 노력에 지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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