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과학과 사회] 소득 수준 따라 달라지는 '불평등 수명'
작성자 조선일보
등록일 2018-05-10 17:4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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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제약 산업 투자 증가, 人類 평균수명도 꾸준히 늘어
빈부 격차로 '건강 양극화' 惡化… 公共性 높여 모두 혜택 누려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로불사(不老不死)의 꿈은 과학 발전의 주요한 추동력 중 하나다. 진시황제의 '불로초 찾기'를 현대적 용어로 하면 '식물 생태 조사를 통한 천연물신약 탐색'이다.

여러 연구 결과에 의하면 석기시대에 태어난 인류의 예상 수명(기대 수명)은 30세 언저리였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40세를 넘지 못했다. 기아(饑餓)·전염병·전쟁 등 생명을 위협하는 재난은 일상사였고 각종 감염·미생물과의 전쟁에서 인간은 늘 약자였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고 상하수도가 정비되면서 기대 수명이 늘어났다. 그 일등공신은 위생과 영양의 개선이었다.

파스퇴르가 병원균과 살균의 원리를 알아내고 플레밍이 항생제를 찾아내면서 인류는 '주어진 생물학적 수명'을 온전히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되었다. 장수(長壽)는 더 이상 운 좋은 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과학의 발전은 인류에게 건강한 심신을 오래 가질 수 있게 했고 개인은 각자의 건강을, 사회는 공중의 건강을 '관리'할 수 있게 했다. 20세기 중반부터 세계인의 평균 기대 수명은 꾸준히, 그러나 과거 수천 년간과 비교하면 가파르게 증가해 71.5세에 달했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는, 생명체로서의 지극히 본능적인 욕구는 과학 연구에 투영된다. 돈을 기꺼이 내 구입할 사람이 많기에 생명과학과 제약 산업에서 연구개발(R&D) 투자가 급증한다. 그리고 그 연구 성과는 더 건강하고, 더 긴 삶으로 보답한다. 사람들은 더 오래 더 많이 과학에 의존하고, 또 더 오래 더 많이 과학에 지출하는 '선순환'이 벌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순환은 불평등을 낳는다. 값비싼 신기술은 지불 능력이 있는 이에게만 봉사하기 때문이다. 첨단 조기(早期) 진단 기술의 혜택을 누리는 부자 노인과 그렇지 못한 노인의 천수(天壽)는 하늘이 결정하지 못하게 됐다.

이미 소득수준과 건강 수명의 상관관계는 뚜렷해지고 있다. 서울대 의대의 2015년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소득수준 상위자 20%의 남아있는 살 날은 하위자 20%보다 6.1년 정도 길다.

이런 경향은 시작일 뿐이다. 과학은 지금의 상식을 성큼 넘어선다. 지금까지의 과학은 '생물학적 한계까지 살 수 있게 돕는' 위주였다면, 앞으로의 과학은 '인간을 강화하여 이 한계를 뛰어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실제로 정밀 의료와 유전자 치료, 인공장기, 조직공학, 심지어 노화(老化) 자체를 극복하는 것까지 이미 가시권에 들어와 있다. 이 같은 '강화(强化) 인류'가 등장하면 소득에 따른 수명의 양극화가 점점 더 심해지고 고착화될 것이다. 사람들은 오래 살려고 저축하고 오래 살면서 그 돈을 다 쓸 것이며, 타인이나 후손과는 잘 나누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고비용의 고령 사회가 펼쳐지는 것이다.

문제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 시장의 탐욕이 손잡을 때, 과학이 어디로 튈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지만, 생명과학의 공공성을 높여 과학의 성과를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긴요하다.

특히 생명과학 연구에 대한 공공 지출을 강화하고 이 연구들의 기획 단계부터 시민들의 참여를 활성화해 진행 과정과 과실이 특정 계층에 편향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초 연구에 대해서도 공공성 확보를 전제로 규제를 합리화해 과학의 진보와 사회적 책임이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고령 사회가 숙명이라면, 최소한 도덕적이고 지속 가능한 고령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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