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 北 과학기술자들도 '완전한 非核化'를 해야
작성자 조선일보
등록일 2018-06-29 10:3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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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핵심 노하우 가진 기술인력 재교육 거쳐
-민간 기술분야에 배치… 혁신과 富 경험케 해야


북핵 제거를 향한 발걸음이 겨우 떼어졌다.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많다. 핵을 불능화하는 것은 국제정치적 개념이지만, 핵을 다시 만들지 못하게 하는 완전한 비핵화는 많은 부분이 과학기술 영역에 속한다. 핵시설을 폐기하고 핵물질의 생산 이력(履歷)을 핵사찰을 통해 검증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과학기술적 어려움이 하나둘이 아니다.

숨긴 핵물질 또는 핵무기가 있는지 확인하려면 '신고서'가 주장하는 플루토늄과 농축우라늄을 얼마나 만들었는지, 핵실험에서 얼마나 소모했는지를 과학적 분석을 통해 알아내고, 내어 놓은 양과 앞뒤가 맞는지 따져야 한다. 비핵화 검증의 성패는 '말'이 아니라 '실험 데이터'에 달려 있다.

핵무기는 첨단기술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갖지 못한 것이기에 핵을 가진 북한의 과학기술 수준을 과대평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핵무기는 1940년대에 등장한 오래된 기술이다. 공식적으로 핵을 보유한 5개국이 핵무기를 독자 개발한 때는 구소련 1949년, 영국 1952년, 프랑스 1960년, 중국 1964년이다. 핵무기의 과학적 원리와 기술적 기본 설계는 널리 알려져 있어 기밀이랄 것도 없다.

핵개발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첨단 과학기술 역량이 아니라 국제질서를 무시하고 국제관계의 파탄을 각오하는 것이다. 세계 6위 수출대국이며 동·하계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한 한국은, 과학기술 역량이 넘침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만들 수 없다. 무기로서 작동성을 확보하고 핵개발을 공표하려면 수차의 핵실험이 필수인데, 사용후 핵연료 보관시설을 지을 곳도 없는 마당에 핵실험장은 말할 것도 없다.

핵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과학기술은 낙후돼 있다. 이는 국내외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자 탈북 과학기술자들이 전한 실상에 기초한다. 이렇게 된 것은 오랫동안 핵개발에 집중한 결과 북한의 과학기술체계가 왜곡됐기 때문이다. 또 시장경제가 유인하는 혁신이 없다 보니, 민간 연구개발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경제난으로 기초과학 연구 지원을 못하는 것도 큰 요인이다. 정보통신 통제로 최신 논문·기술 동향을 접하지 못하는 북한 과학기술계가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난망(難望)이다.

완전하고 비가역적인 비핵화는 핵무기의 반출뿐 아니라 생산 능력의 제거를 포함하며, 그 필요조건 중 하나가 핵개발에 투입됐던 과학기술 인력을 통제하는 것이다. 이들의 손끝에 핵무기 개발의 핵심 노하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반(反)인류적인 핵무기 개발에 종사한 과학기술자들을 해외로 보내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인권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이들을 전범(戰犯)과 같이 봐야 할까? 과학을 오용하는 정권이 문제인가, 오용될 걸 알면서 협조한 과학자가 문제인가? 이는 70여 년 전 맨해튼 프로젝트가 던진, 과학에 정치와 윤리가 얽힌 난제로, 과학기술자들에게 공식적인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일부 핵심 인력은 핵사찰과 검증 과정에 투입돼야 할 것이나, 결국 모든 북한 핵기술 인력은 재교육을 거쳐 민수 기술 분야에 종사토록 재배치되어야 한다. 핵개발에 직간접 참여했던 북한 과학기술자는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진 뒤 정상국가의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핵심 인재로 거듭나야 한다.

시장경제체제에서 과학기술이 어떻게 혁신으로, 나아가 부(富)로 연결되는지 경험토록 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의 역할이 독재체제에 봉사하는 게 아니라 국가와 사회를 발전시키고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과학기술자는 어느 나라, 어떤 경우에도 핵개발 현장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박상욱 서울대 교수·과학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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